도서 ‘영화하는 여자들’

책 ‘영화하는 여자들’은 여성 영화인들의 인터뷰집이다. 총 20인의 인터뷰가 담겼는데, 한국 영화사 중 1990년 대부터 2010년대까지 30년 동안 영화 현장의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한 여성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제작부터 기획, 연출, 마케팅, 사운드, 조명, 촬영, 편집, 연기, 위원회나 영화제 등 관련 직종 종사자까지 여러 분야 사람들을 망라하고 있어서 재미있게 읽었다.

영화를 좋아해도 관련한 일을 하지 않다 보니 영화 현장이나 작업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그래서 영화가 만들어지고 선보이는 과정을 떠올릴 때면 굉장히 추상적으로 상상하고 생각했는데, 책에서 인터뷰이들이 각자 일하는 방식이나 생각하는 지점들, 성장해온 행보를 정성스럽고 구체적으로 답변해주어서 많은 점을 새롭게 배울 수 있었다. 역시 한 사람의 삶을 들여다볼 수 있는 내용의 책은 흥미롭다. 또 삶이 영화와 연관되어 있는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다 보니, 이들의 입장에서 영화를 보는 것이나 구상하는 것도 참고차 배울 수 있었다.

책을 보며 내 생각보다도 많은 여성들이 영화와 관련한 일에서 적극적으로 직업 활동을 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예를 들어, 사운드 에디터나 영화 홍보를 하는 사람은 오히려 여성이 남성보다 더 많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여성들이 단순히 일이나 업무 외에도 정말 세상에 필요한 활동을 적극적으로 병행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도 많이 들었다(사실 떼려야 뗄 수 없지만). 예를 들어 한국영화성평등센터 든든 설립 및 활동 등을 통해 성폭력 및 차별 문제 해결을 위해 힘쓰고, 노동 시간이나 임금과 관련해 52시간 근무제나 표준근로계약서 적용, 노조 설립 등 영화업계 종사자들의 권익 확보와 인권 보호 및 향상을 노력하고, 새로운 형태의 영화나 작업 방식, 조직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며 힘들지만 의미 있는 발걸음을 내딛는 모습이 인터뷰에 담겨 있다. 이런 면모를 독자 입장에서 조금이라도 볼 수 있어서 뜻깊다. 직업인으로서 일에서도 최선을 다할 뿐만 아니라 이 사회가 더 건강한 방향으로 흐르는 데에 적극적으로 고민하고 행동하며 기여하는 이들에게 존경심이 들었다.

책은 영화와 여성에 대해 계속 고민하고, 공부하고, 활동하고 있는 사람들이 인터뷰어로 참여했다. 그래서 주제에 대한 풍부한 이해를 바탕으로 다각도에서 질문들 던지고 있는 것이 장점이다. 또한 이 책은 여성 영화인의 관점에서 봐도 좋지만 영화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 한국 영화의 역사나 현주소를 공부하는 관점에서 보아도 흥미롭다. 그리고 첫 페이지부터 순서대로 읽어도 좋고 특정 인물이 궁금하거나 알고 싶어질 때는 해당 부분을 찾아보는 식으로 봐도 괜찮다. 처음 읽을 때 나는 전체를 처음부터 끝까지 읽었는데 이후에는 필요한 부분을 그때그때 찾아 읽고 있다. 다시 읽을 때 새롭게 들어오는 부분이나 좀 더 깊게 이해되는 면도 많아서 두고두고 읽기 좋다는 생각을 했다. 책은 시간적 흐름도 있고 책 전체를 관통하는 테마도 있지만, 20인 인터뷰가 각각 분리돼 독립성도 띄고 있어서 관심 가는 분야나 인물을 찾아 다시 읽는 과정을 즐길 수 있다.

책 마지막에는 여성 영화인들의 타임라인이 나와서 시간 흐름에 따라 정리해 볼 수 있다. 그리고 책을 읽고 관심이 생긴 부분이나 관련 단체, 사건을 참고해 작품을 보거나 더 많은 정보를 찾아보면 더 색다르게 볼 수 있는 지점을 주는 참고 자료가 되어서 유익하다. 예를 들어 윤가은 감독의 ‘우리집’ 촬영 수칙, 제정주 대표가 만든 단체 ‘아토’ 등을 접하고 해당 감독이나 제작사의 작품을 감상하면 처음 보는 사람도, 다시 보는 사람도 또 다른 재미를 느낄 것이다. 인터뷰이 누구 하나 꼽지 않아도 두루두루 내용이 좋고 각자의 개성이 묻어나기에 책 ‘영화하는 여자들’을 추천한다. 그리고 책이 좋아서 아직 이야기를 듣지 못한 더 많은 여성 영화인들의 삶과 시각도 담아주면 좋겠다는 아쉬움도 든다. 이 기획이 계속 되어서 앞으로도 '영화하는 여자들' 시리즈가 이어져 나오면 좋겠다.

‘영화하는 여자들’ / 주진숙 이순진 지음 / (사)여성영화인모임 기획 / 출판사 사계절 / 정가 19,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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