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랑 소설 추천 '시선으로부터,'

시선으로부터, 표지 사진 (사진 출처: YES24)

'시선으로부터,’는 참 신기한 구석이 많은 책이다. 일단 제목을 잘 보면 시선으로부터가 아니라 시선으로부터,이다. 누군가에게 책을 추천하며 말로 제목을 전달할 때 시선으로부터라고 말하지 선뜻 쉼표까지는 말하기 어렵다. 하지만 쉼표를 찍어둔 작가의 의도가 있을테니 왠지 쉼표도 있다고 꼭 집어서 말하고 싶다. 하지만 원래도 쉼표까지 소리내 읽지 않을뿐더러 너무 까다롭게 유난을 떠는 거 같으니 역시나 그냥 시선으로부터라고 소개한다.

책은 가계도로 시작한다. 나는 이때서야 제목에 있는 시선이 눈길 등을 뜻하는 명사로가 아니라 등장 인물 이름이자 고유 명사로 쓰인 것을 알았다. 가계도의 중심은 시선이고, 인물들은 시선으로부터 뻗어 나간다. 유심히 보아도 인물이 꽤 많고 가계도는 일상적이지 않아서(?) 구체적인 이름과 관계 전부를 기억하기 어렵다. 하지만 가계도는 책을 보면서나 책을 다 읽고도 챙겨볼 때 재밌는 구석이 많다.

한 번도 살아서 등장하지 않는 주인공 심시선은 더없이 당당하고 멋진 인물이다. 우리는 책 속의 글과 말과 목소리로 시선의 사유와 존재를 알 수 있다. 이런 멋진 인물 시선도 세상의 시선에 맞춰서 평가받고 수많은 곡해와 반복적으로 싸워야 한다. 현실을 사는 내게도 너무 익숙한 지난한 과정이라 질리는 피로함이 느껴진다. 하지만 정말 다행인 것은 시선은 후손들과 그들의 기억으로도 존재한다. 물론 부모 자식이나 가족 관계라고 서로 모두 이해하는 것은 아니다. 일단 이 후손들은 시선이 절대 하지 말라던 제사를 열지 않는가... 하지만 시선의 후손들답게, 다 성향은 달라도 세상에 악의적으로 꼬인 구석없이 각자의 방식으로 삶을 살고 사유하는 사람들이라는 점에서 정감이 간다. 시선이 원했는지는 모르지만 시선을 닮았다. 제사도 나름대로 시선과 서로 나눈 추억을 바탕으로 각자가 이해한 다양한 방식을 취하고 있다는 면에서 시선의 생은 평균 이상의 해피 엔딩이라고 내 멋대로 평가해본다.

정세랑은 작가의 말에서 ‘이 소설은 무엇보다 20세기를 살아낸 여자들에게 바치는 21세기의 사랑이다’라고 한다. 정말 책을 잘 정리하는 멋진 말이다. 그래서 마치 사랑 편지의 시작처럼, 제목도 시선으로부터, 가 아닐까. 그리고 사랑 편지의 낭만처럼, 이 책에 나오는 인물들 모두 다뤄지는 방식 면면이 (세상과 사회와 사람들의 풍파와 편견들 속에 각자가 겪는 고민을 절대 외면하지 않고 정세랑 특유의 뭉툭한 날카로움으로 다루고 있음에도) 희망적인 것은 아닐지. 얼마나 많은 20세기의 여성들이 존재를 알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존재하기 위해서 시간을 버텼을까. 글과 말과 목소리를 남기지도 못하고, 후손과 기억도 남기지 못했을 수많은 사람의 삶이 가늠되지 않는다. 21세기를 살아가는 평범한 나도 별반 다를까 싶지만, 시선으로부터 우리에게 쓴 이 편지를 보며 우리는 모두 별반 다르길 바라본다. 사람들 억울함이 줄어드는 쪽으로 세상이 나아가면 좋겠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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