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영화 추천 ‘소공녀’ (Microhabitat)

(본문에는 영화 내용에 대한 상세 정보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전고운 감독의 영화 ‘소공녀’는 겨울이라는 계절에 잘 어울린다. 보고 나면 머리에 ‘미소’가 가득해진다. 맞다, 얼굴이 아니라 머리에다. 주인공 이름이 미소(이솜 역)다.

미소는 정말 멋진 사람이다.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그 취향을 명확히 안다. 미소가 좋아하는 건 담배, 위스키, 그리고 남자친구 한솔(안재홍 역)이다. 나는 내가 뭘 좋아하는지, 뭘 하고 싶은지 잘 모를 때가 많은데 부러울 따름이다. 미소는 좋아하는 것을 꾸준히 행하면서 산다. 편의점에 들려서 담배도 꼬박꼬박 사다 피고, 바에 들려서 위스키도 한 잔씩 마신다.(한잔이다. 과음도 안 한다.) 얼어죽게 추운 날에도, 피를 뽑아 영화를 봐도 한솔이와 만나 데이트한다. 한솔이와 함께하는 시간 모두를 사랑한다. 좋아하는 것을 뒤로 미루고, 원치 않는 것에 시간을 쓰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은 현대 사회다. 미래라는 명목에 행복을 미루지 않고 참 똑똑하게 하루를 사는 미소다.

미소는 가사 도우미를 하며 쓸 돈을 번다. 캥거루족과 니트족(NEET: Not in Education, Employment or Training)이 넘쳐나는 시대에 누구에게 손 벌리지 않으며 자급자족하는 대단한 친구다. 생업의 영역에서 미소는 프로페셔널하다. 잘할 뿐만 아니라 꾀부리지 않고 성실하다. 고용인이 없는 집안에서 쉬엄쉬엄 대충할 법도 한데 욕실, 창문 등 모든 영역을 꼼꼼하게 신경 쓰며 집을 치운다. 미소는 자신에게 필요한 게 무엇인지도 잘 알고 있다. 밥, 약, 집 등이다. 이를 위해 생활비를 벌고, 하루 가계부를 적고, 필요한 비용을 잘 분산해 담아둔다. 나는 기록과 계획하는 습관도 없이 정신없는 지출을 일삼는다. 월말이 되면 원인도 파악 못 한 채 허덕이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런 나보다 백배 낫다. 그 지출 내역에는 종종 (어떤 의미인지 명확하지는 않지만) 세금도 있다. 고액체납자가 넘치는 세상에서 국민의 의무까지 잘 지키다니 나무랄 데 없는 준법 시민이다.

미소는 신용을 지킬 줄 안다. 더이상 월세를 감당하기 어려워 방을 빼기로 결심했을 때 절대 도망치지 않고 모든 월세를 처리하고 나온다. 받는 사람이 따로 금액을 확인하지 않을 정도다. 이런 모습 말고도 미소는 참 좋은 사람이다. 친구네 집에 신세를 지러 갈 때, 본인도 어려운 형편인데 계란 한 판을 꼭 사갈 정도로 정답다. 가면 자신의 능력을 발휘해 음식도 해주고, 집도 치워주고, 때로는 사람 사는 것 같은 온기도 함께 준다. 떠날 때 감사의 쪽지도 꼭 남기는데 그 내용도 그림도 예쁘다. 그래, 역시 따듯한 태도는 경제력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마음에서 나온다. 미소는 과거에도 좋은 사람이었다. 대학생 시절에 친구들도 잘 재워주었고, 다단계에 빠질 뻔한 친구를 도와주기도 했다. 그래도 생색 한 번을 내지 않는다. 미소도 진심으로 좋아서 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한결같다.

미소는 인생의 우선순위에 따라 선택도 잘한다. 자신의 취향을 잘 알더라니, 역시 현명한 사람이다. ‘월급 빼고 다 오른다’는 표어처럼 미소의 일당 빼고 모든 비용은 상승한다. 담배값이 인상되고(내가 담배값 인상을 낭패로 여긴 유일한 순간은 아마 이 영화의 미소를 보면서다), 위스키 한 잔의 값이 오르고, 월세도 오른다. 취향비(?)가 오르기 시작하자 미소는 자신이 필요한 선택지를 줄여간다. 담배값이 인상되니 집을 나와 월세를 아끼고, 위스키값이 오르니 대신 약을 먹지 않는 선택을 해 머리를 백발로 둔다. 어떤 한계 지점에 도달했을 때 우선순위에 따라 명확하게 판단할 줄 아는 인물이 미소다. 포기한 것에 미련을 갖지 않고 깔끔하다. 포기를 잘 하다니, 찌질하고 우유부단한 나는 입이 쩍 벌어질 정도로 놀랍다. 미소는 사람을 원망하지 않는다. 어려움 앞에서 치졸한 마음은 커지기 쉽고, 치졸한 마음에 원망하지 않아야 할 대상도 쉽게 원망하게 되는 요즘 세상이다. 타인에게 나쁜 마음을 먹지 않는 것은 엄청난 인격이다. 미소는 사람에게 따봉도 잘 해주고, 진심으로 응원도 잘해준다. 또 사람의 가능성을 함부로 재단하지 않는다. 만약 민지가 네일샵을 차리고, 한솔이가 사우디에서 웹툰을 계속 그린다면 미소의 공이 크다.

‘소공녀’(Microhabitat)는 미소의 영화다. 우리는 미소처럼 되기도 어렵고, 미소 같은 사람을 주변에 두기도 어렵다. 그래서 이 영화는 판타지다. 미소가 소설 ‘소공녀’(A Little Princess)처럼 부유해지지 않고, 점점 작은 서식지(Microhabitat)에서 머무는 결말일지라도, 미소 자체가 엄청난 판타지다. 그래도 겨울이라는 계절에 미소가 그 누구보다 따듯하게 지내길 바라본다.

모든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소공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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