왓챠 영화 추천 ‘야구 소녀’ (Baseball Girl)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야구 소녀')

(본문에는 영화 내용에 대한 상세 정보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초등학교 고학년까지 나는 운동선수가 꿈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가면서 운동선수가 되기 어렵다는 막연한 불안감 속에 현실적인 어려움을 어렴풋이 알았다. 주변의 반대와 특출나기는커녕 운동에 불리한 신체 조건, 이 모든 것을 이겨낼 정도로 적극적으로 구체적인 방법을 찾지 않는 나의 태도까지 더해져 점점 운동선수의 꿈은 지워졌다. 이후는 스포츠 기자, 감독 등 관련 직업으로 꿈은 우회했다. 그리고 현재는 운동과 전혀 상관없는 사무직을 생업으로 하루하루 보내며 살고 있다. 다만 워낙 운동을 좋아했던 나는 성인이 된 후 생활체육 동호회에 들어갔는데, 내 많은 자아가 여기서 실현될 정도로 나름 만족(실력을 말한 것은 아니며, 좋아하는 것과 별개로 놀랍도록 운동을 못 하지만 나는 매우 즐겁다.)하며 활동 중이다. 직업으로 못 삼은 건 지금도 종종 아쉽지만 생업과 취미의 주객전도를 통해 만족도를 높이고 있다.

서두와 사담이 길었는데, 본론으로 들어가 보자. 최윤태 감독의 영화 ‘야구 소녀’는 고교 야구팀 소속의 유일한 여성 선수인 주수인(이주영 역)의 프로 야구 선수 도전기다. 주인공 수인의 도전은 쉽지 않은데, 졸업을 앞둔 시기에 드래프트나 스카우트는커녕 프로 구단이 자체적으로 입단 테스트를 열고 선수를 선발하는 트라이아웃에 참가하기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수인은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장점을 만들며 트라이아웃에서 프로 선수로 선발될 수 있도록 노력한다.

영화를 칭찬하기에 앞서 단점을 조금 말해보려 한다. 영화는 종종 잘못된 상업 영화의 클리셰 같은 대사나 연출을 반복한다. 예를 들어 야구를 계속하겠다는 수인이 엄마와 대립해 대화할 때 갑자기 엄마는 꿈도 없고 돈밖에 모른다고 외치는 장면이나 코치 진태와 수인이 훈련하는 장면이 그렇다. 직업이 없는 아빠를 대신해 어쨌든 집안의 가정 경제를 책임지며 수인의 고등학교 운동부 생활까지 지원해준 엄마를 수인도 모르지 않을 것이다. 또 이미 중학교에서 고등학교 엘리트 선수로 진학하고 3년을 생활해내며 수인이 했을 훈련과 노력이 엄청날 것임에도, 영화 속 훈련이나 수인의 모습은 너무 극과 극일 때가 많다. 이런 흐름은 영화의 전제가 되는 야구와 관련한 몇몇 설정의 비현실성(수인의 키나 근력 같은 신체 조건이나 구속, 구종 습득 등)보다도 더 영화에의 몰입을 방해한다. 효과적이지 못한 클리셰를 답습하며 독립 영화로 가질 수 있는 장점을 스스로 포기하는 것 같아 아쉽다.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야구 소녀')

그럼에도 이 영화는 관객의 몰입을 자아내고 때로는 우리를 울컥하게 만드는 힘이 있는데, 거기에는 바로 주인공 수인이 포기 않고 보이는 초지일관한 자세가 있다. 프로에 도전하겠다는 수인에게 장해물은 너무 많다. 포기할 줄 아는 건 부끄러운 게 아니라며 생업을 찾길 요구하는 어머니부터 무능력한 아버지로 인해 어려운 가정 경제 형편, 프로로 가는 적극적 활로를 찾아줄 생각이 없는 팀 감독이나 코치, 우호적이지 않은 팀 동료 및 남성 선수들과 프로팀 프런트들, 끊임없이 다른 미래를 추천하거나 우회로를 종용하는 경우까지. 수인을 가로막는 것은 수인의 성별이나 신체 능력보다 이런 주변의 높은 벽이다. 그러나 수인은 이런 벽 앞에서 돌아서거나 길의 방향을 바꾸지 않고 프로가 되겠다는 자신의 꿈을 향해 나아간다. 그 고집스러운 뚝심과 증명은 결국 주변을 설득해 응원과 지지를 얻는다. 너클볼을 알려주며 트라이아웃을 함께 만들어 가는 코치 진태부터 함께 해주는 동료 정호와 친구 방글이, 자신이 좋아서 시간을 내 돕는 김 선생, 결국 믿어주는 엄마 아빠, 함께 트라이아웃에 참가한 선수들이나 프로 프런트까지 수인의 곁에서 물심양면 돕거나 결국 마음을 돌리는 이들은 수인의 진심에 감응한 것이다.

영화를 보며 ‘수인아, 이만하면 할 만큼 했고 너의 노력과 의지가 충분히 증명되었어. 고생했으니 이제 새로운 길을 가도 돼’라며 보내던 관객으로의 응원은 ‘나도 모르는 내 미래를 누가 알아’라는 수인의 태도 앞에 번번이 무색해진다. 사실 내 마음은 살면서 꿈을 꺾었던 내 경험과 어른이 되며 배운 현실과의 타협일 뿐임을, 응원이 아닌 또 다른 방해일 수 있음을 깨달아 머쓱해지는 것이다. 이런 관객의 감정은 영화의 말미에 꽤 좋은 조건으로 프로 구단 프런트 자리를 제시받은 수인이 이를 거절할 때 극대화된다. 프로 선수의 길은 아니지만 이 또한 수인이 트라이아웃에서 보인 실력으로 얻은 기회인 것은 틀림없다. 하지만 자신의 꿈은 프로 선수이고, 자신의 공이 느려도 이길 수 있다며 수인이 다시 한번 우회로를 거절할 때 영화는 비로소 다시 시작한다. ‘야구 소녀’는 프로 2군 선수 계약을 맺고 한 단계를 넘는 수인으로 끝이 난다. 또한, 수인을 보며 꿈을 키운 또 다른 여성 선수가 고교 엘리트 팀에 지원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야구 소녀')

내가 좋아하는 정세랑의 소설 ‘피프티 피플’ 중 한 에피소드에서는 ‘돌을 던지는 일’에 대해 나온다. 우리가 하는 일이 의미 없다고 느껴질 때, 우리는 그저 멀리 돌을 보내는 일을 하고 있다고 여겨보자는 것이다. 그러면 내가 비록 무엇을 이루지 못한 것처럼 느껴져도, 다음 세대의 사람은 내 덕에 내 돌이 떨어진 위치에서 다시 그 돌을 잡아 시작하면 된다. 그렇게 함께 조금씩 더 나아갈 수 있다. 영화는 실제 인물인 안향미 선수 실화를 모티브로 하고, 그 외 여러 다른 선수들의 인터뷰를 참고하며 만들었다고 한다. 실제 인물들이 조금씩이나마 던진 돌에 영향을 받아 영화 ‘야구 소녀’라는 돌이 던져졌다. 그리고 주인공 수인도 돌을 던지고 있다. 영화 속 이야기 이후 수인을 상상할 때, 누군가는 프로 생활은 오래 하지 못했을 거라고, 대신 프런트에서 여성 야구를 위해 일하거나 여성 야구팀에서 선수 생활을 이어갔을 것이라 생각한다. 프런트에서 여성을 위해 일하는 것도, 여자 야구팀에서 일하는 것도, 혹은 외국 리그나 생활체육에서 야구를 계속하는 것도 분명 의미 있는 돌 던지기다. 하지만 난, 수인이 프로 1군에 도전하고 계속 프로에서 좋은 선수로 살아남기 위해 지금처럼 모든 노력을 다 쏟아부으며 공을 던지는 모습을 상상한다. 그것이 수인이 보여준 그 뚝심에 대해 관객으로 보내는 호응이며, 돌 던지기다.

cf. 왓챠에는 현재 '야구 소녀' 뿐만 아니라 '야구 소녀 코멘터리'도 올라와 있습니다. 관심 있는 분들은 함께 찾아보시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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