왓챠 영화 추천 ‘나이브스 아웃’ (Knives Out)

'나이브스 아웃' 포스터 (출처: 네이버 영화 '나이브스 아웃')

(본문에는 영화 내용에 대한 상세 정보가 일부 포함되어 있습니다.)

 

최근 왓챠에서 영화 ‘나이브스 아웃’을 봤다. 주변 추천을 많이 받았던 터라 극장에서 보지 못한 게 아쉬웠는데, 마침 왓챠 메인에 올라와서 얼른 보았다. 두 시간이 넘는 러닝 타임이 금방 흐를 정도로 재밌었고 확실히 호평받은 이유를 알 수 있는 수작이었다. 왓챠의 설명에 ‘나이브스 아웃’은 올해 최고의 후더닛무비라고 되어 있다. 후더닛(whodunnit)은 추리극, 탐정극을 말한다. ‘누가 했는가’라는 영어를 발음되는 대로 쓴 것인데, 보통 살인이 일어나고 누가 범인인지를 밝혀가는 이야기다. 장르적으로 훌륭한 짜임새의 미스터리 영화라는 점에서 '나이브스 아웃'에 이 설명은 적절한 것 같다.

'나이브스 아웃' 스틸컷 (출처: 네이버 영화 '나이브스 아웃')

‘나이브스 아웃’은 유명한 추리 소설 작가 할런 트롬비(크리스토퍼 플러머 역)가 85세 생일 파티 이후 죽은 채 발견되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자살인지 타살인지, 타살이라면 누가 무슨 이유에서 했는지 극 중 유명 탐정인 블랑(다니엘 크레이그 역)과 간병인 마르타(아나 데 아르마스 역)를 중심으로 추리해 가는데, 관객이 흥미를 잃지 않고 몰입하게 하는 포인트가 시종일관 존재한다. 의미심장하게 피아노 건반을 치며 등장하는 탐정 블랑-뜬금없지만 사실 경찰에게 질문을 하라는 약속된 신호이다-부터 누가 왜 거짓말을 하는지 / 범인이 누구인지 / 누가 블랑을 고용했는지 / 마르타는 어떻게 상황을 극복해가는지 / 무엇이 사건의 복선이고 상징이며 끝에 어떻게 회수되는지까지 흐름에 따라 적절히 배치되어 있다. 이런 면에서 킬링 타임용으로도 매우 좋은 영화지만, 사실 등장인물이 많고 전개 속도도 빨라서 한 번에 이해하기는 쉽지 않은 것 같다. 하지만 왓챠에 올라왔으니 재생과 정지를 자유롭게 해서 정리해가며 보기에도 좋고 여러 번 돌려 보기에도 좋다. 그리고 추리의 관점에서나 코미디 요소나 여러 번 봐도 충분히 재밌는 영화이다.

‘나이브스 아웃’은 장점이 매우 많은데, 일단 각본과 연출을 함께 맡은 각본가 겸 감독 라이언 존슨의 공이 크다. 추리 소설은 그 개연성이 떨어지거나 스토리에 허점이 있으면 김이 빠지며 허접해지기 쉬운데, 라이언 존슨은 탄탄한 구도와 확실한 캐릭터들을 기반으로 이야기의 강약 조절을 아주 잘하며 훌륭한 추리 영화의 기본을 잘 지키고 있다. 라이언 존슨은 아가사 크리스티를 가장 좋아하는 작가로 꼽았는데, 어떤 원작을 각색하거나 한 게 아닌데도-여러 추리 소설의 영향은 받았겠지만, 이 영화는 원작이 따로 없다- 이렇게 훌륭한 이야기를 창작한 것을 보면 작가로의 본인 능력도 출중한 것 같다. 또 그래서 더 훌륭한 각본이 나왔다고 생각된다. 대게 소설을 각색하는 경우, 기존 작품을 그대로 옮기거나 소설의 작법을 포기 못 해 도리어 영화의 문법을 획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대작 소설의 경우라도 형태를 바꿔 만들 때 도리어 아쉬움이 남는 경우가 매우 많다. 그런데 이 작품은 기존부터 영화로 구성되고 생각된 듯하고, 감독이 영화 촬영을 고려하며 글을 쓰고 글에 대한 이해 탁월한 상태에서 연출했기에 연출이 각본을 살리고 각본이 연출과 어우러져 표현되는 시너지가 난다.

'나이브스 아웃' 스틸컷 (출처: 네이버 영화 '나이브스 아웃')

출연진과 그들이 연기하는 캐릭터를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사운드 오브 뮤직의 대령 아저씨부터 007 아저씨, 랜섬(크리스 에반스 역)을 연기하는 캡틴 아메리카 아저씨를 비롯해 다른 등장인물들 모두 어디에서 한 번쯤은 봤거나 최소한 들어봤던 작품에 출연한 적 있는 화려한 출연진이다. 이 배우들이 성격 명확하면서도 위선적이고 상징적인 캐릭터들을 적절하게 소화하며 유기적으로 극에서 동작하고 있다. 아마 각본과 캐릭터가 워낙 좋으니까 다들 출연한 게 아닐까 싶다. 또 감독이 라디오헤드 팬이라 노래 제목 중 하나에서 따왔다는 ‘나이브스 아웃’은 매우 잘 지은 제목이라고 생각한다. 극 중 칼의 역할이나 상징적인 의미를 생각해도 그렇고, knives out의 뜻을 생각해봐도 그렇다. (knives out은 칼을 꺼내다, 칼로 찌르다, (비유적으로는) 누구를 비난하거나 책임지게 해야 하는 적대적으로 험악한 상황을 말한다.) 

인물과 칼을 포함해 오목, 대저택 등 극에는 암시를 주는 상징적인 요소와 소품들이 가득하다(그런데 오목이 내가 아는 오목이 맞다면, 오목 장면 너무 대충 찍은 것 아닌가? 의도가 있더라도 게임과 기본적 승부는 성립하게 찍어야 하는데 옥에 티처럼 느껴진다ㅋㅋ). 생일을 맞아 인생과 관계를 정리한 트롬비는 아마 자살을 하려 했거나 생일 이후 누구에 의해 타살될 가능성을 염두에 둔 듯하다. 그렇기에 오목을 두며 마르타와 나누는 대화는 매우 뜻깊다. 대저택과 트롬비 가족은 미국과 21세기 현재 미국 주류층 정도로 볼 수 있는데, 영화 마지막에 마르타와 가족들의 역전된 구도는 인상적이다. 거짓말, 도넛의 비유 등 무형의 소재 사용도 좋다. 극의 등장인물들은 하나 같이 거짓말을 하거나 남을 속이지만 이를 수습하고 바로잡는 차이가 곧 결과의 차이를 만든다. 과정을 중시하고 선한 마음에서 결국 자신의 방식을 따르는 것이 좋은 결과로 나오는 것이다. 또한 이야기와 이야기, 반전과 반젼이 연속되며 도넛의 안이 채워지는 과정은 결과적으로 이야기가 딱 떨어질 때의 쾌감을 준다. 이 밖에도 추리소설 덕후라면 좋아할 요소나 언급이 잔뜩이니, 연관돼 해석할 수 있는 요소를 찾아보며 영화를 보면 재밌을 것이다.

 

영화 ‘나이브스 아웃’은 이야기나 소재에 비해서 연출이 자극적이지 않은 편이라 쫄보인 나 같은 사람도 편하게 볼 수 있었다. 또한 인물 관점에서는 권선징악, 사회적 시각이나 정치적 관점에서도 교훈적이라는 면에서 영화를 다 보고 난 후 찝찝한 구석이 적어 마음이 꽤 좋았다. 기본이 갖춰진 상태에서 이런 여러 포인트에서 함께 어필하는 훌륭한 이야기라 누구에게든 자신있게 추천한다. 개인적으로 각본을 보고 싶었는데, 마침 라이언 존슨이 본인 각본을 무료로 공개해두어서 쉽게 다운받아 읽을 수 있으니 참고하면 좋다(지만 물론 영어다). 영화가 좋았던 덕에 나이브스 아웃2는 아니지만 탐정 블랑을 등장시키는 차기작은 나올 예정이라고 하니 이를 계기로 좋은 미스터리 시리즈물이 나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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