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산사나무 아래

스포일러뿐인 글이다.

크게 공감이 가지는 않는 소설이다. 하지만 마냥 안 좋다고는 이야기하지 않겠다. 내가 모르는 시대에서 발생한 '실화' 바탕 소설이기 때문이다.

아직 영화는 안봤지만 영화의 한 장면이다. 요런 느낌.

소설 자체는 간단한 구조다. 문화대혁명 시기에 아버지와 어머니가 공개적으로 비판을 당하고 어려운 삶을 살아가는 여자 주인공 징치우. 그런 징치우를 만나 사랑에 빠진 잘 나가는 집안의 쑨젠신. 둘의 사랑 이야기다. 로맨스 소설을 좋아하기에 꽤 재밌게 읽을 수 있는 요소가 많았음에도 여러 부분이 '읭'스럽게 나의 몰입을 가로막았다.

우선 여자 주인공 징치우는 지나치게 순수하고 순진무구하게 그려진다. 남녀의 사랑에 대해 백지에 가깝고 소설이 맞지만 그럼에도 너무 소설 같은 주인공이다. 징치우는 뭐든 잘한다. 뜨개질도 잘하고 옷도 잘 만들고 효녀고 일도 잘한다. 돈을 벌기 위해 궂은일도 척척 해낸다. 덕분에 어려운 집안에서 어머니와 동생을 보살피며 꿋꿋하게 살아간다. 이렇게 야무지고 똑똑한 징치우가 남녀와 관련된 것에 대해서는 아예 모른다. 정말 백지와 같다. 여자 주인공을 너무 로맨스 소설에 최적화되게 맞춰 놓은 것 같아서 중간에 그만 읽으려 했다. 그런데 이게 '실화'를 바탕으로 한 소설이라고 한다. 소설이니까 어느 정도 각색은 들어갔겠지만 그럼에도 실화라는 사실 자체가 읽기를 포기하려는 나를 붙잡았다.

내가 모르는 시대니까. 중국에 대해서 하나도 모르니 문화대혁명 시대도 모른다. 그냥 중국의 잃어버린 세월 정도로 알고 있다. 모든 것을 통제했던 시절. 그래서 그 속에서 나고 자라면 어떤 교육을 받고 어떻게 성장하는지 나로서는 알 수가 없다. 문화대혁명같이 이상한 시대에서는 저런 사람도 나올 수 있는 것인가...? 읽으며 말이 안 되는 여자주인공의 생각이나 감정이 나올 때마다 (다른 인물들은 '징치우 넌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구나'라던가 '징치우 넌 너무 순수해'라는 대사로 넘어간다) 문화대혁명 시대는 그랬나보다고 참고 넘어갔다.

또한 남자 주인공 쑨젠신은 너무 급작스럽게 죽었다. 건강했지만 갑자기 백혈병에 걸려서 죽었다. 물론 백혈병은 순식간에 건강을 악화시키고 죽음에 이르게 하는 병이라는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너무 소설 같은 죽음이다. 그리고 쑨젠싱는 죽어가는 걸 징치우에게 알리지 않기 위해서 징치우를 떠난다고 거짓말까지 한다. 심지어 끝까지 본인은 징치우에게 알리지 않는다. 중2병 같은 느낌이 많이 들었다. 물론 어릴 때 인터넷 소설을 보고 많이 울었지만 이건 인터넷 소설이 아니니까. 하지만 여기서도 이 소설이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는 데서 많은 부분이 용서된다. 현실에서 진짜 저러는 사람이 있다는데 내가 뭐라고 말도 안 된다고 할 수 있을까. 현실에서 불가능한 걸 소설에서 너무 미화시켜놓으면 이상하지만, 현실에서 가능하고 실제로 일어났다고 생각하면 중2병이 좀 덜어지는 느낌이다.

산사나무 아래는 수많은 중국사람들에게 호평을 들었다고 한다. 심지어 감동받은 영화 감독이 영화로도 만들었다(한국인의 영화 감상평은 꽤 좋았기에 영화도 보려한다. 영화를 보면 내가 소설에 대해 오해하고 있는 부분들이 해결될 수도 있으니까).

뭐랄까 70년대 소위 말하는 '남자다운' 남자! '여자다운' 여자!, 모든 것을 다 해줄 수 있는 남자와 아무것도 모르는 여자 이런 주인공을 좋아한다면, 백마탄 왕자님과 가난하지만 씩씩한 캔디 이야기를 좋아한다면 한 번쯤 읽어봐도 좋을 것 같다. 난 책을 팔아버릴 것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