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최악의 하루'

2016년 개봉한 영화다. 한예리, 이와세 료, 권율, 이희준이 주인공으로 나온다. 좋아하는 배우 중 한예리는 꼭 들어가기에 예전부터 보려고 했는데 기회가 되지 않았다. 오늘 새벽 일을 마치고 잠을 자며 일어나서 하루 종일 놀아야지 했는데 문득 최악의 하루를 봐야겠다는 생각을 잠결에 했다. 그래서 봤다. 아래 글은 스포밖에 없다.

최악의 하루는 내가 상상한 스토리와 조금 달랐다. 결론을 알고 보는 것을 좋아하기에 영화를 보기 전에 여러 글을 미리 읽는 편이다. 내가 읽은 모든 글에서는 영화의 내용이 여자주인공이 겪는 최악의 하루를 담고 있다고 하였다. 한예리가 양다리를 걸치다 양다리 대상(?)인 두 남자가 한예리와 함께 남산에서 마주하는 상황 정도가 내가 이해한 스토리였다. 그정도면 최악의 하루가 맞다고 생각했다. 내가 한예리라고 생각만 해도 긴장되고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으니. 그런데 영화를 보는 내내 최악의 하루를 겪는 사람이 한예리 하나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이 작품은 '한여름의 판타지아'가 많이 떠올랐는데 주인공 중 한 명인 이와세 료가 거기에 나와서인지도 모르겠다. 영화는 이와세 료가 자신이 구상한 소설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최악의 하루를 겪는 여자의 이야기다. 이때문에 영화 최악의 하루는 이와세 료의 소설 속에서 만들어진 상상세계를 이야기하는 것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이런 영화가 그렇듯 그 판단은 관객의 몫이다. 이와세 료의 이야기가 끝나며 한국에서 연기자로 살아가는 한예리가 등장한다. 시작부터 좋지 않다. 연기연습을 하는데 같이 연기를 하는 선배(?)에게 연기를 못하니 연애라도 많이 하라는 소리나 듣는다. 연습이 끝나고 남자친구인 권율을 만나러 가는데 한국에 방문한 이와세 료가 길을 물어온다. 이와세 료를 목적지에 잠깐 데려다주고 커피를 한 잔 같이 마신다. 그 과정에서 약간이란 말도 과한 정말 소량의 호감을 느끼는 것 같다.

이와세 료와 커피를 마시고 만난 남자친구 권율을 만난다. 권율은 배우다. 아침드라마에 출현하는 것 같은데 한예리를 만나기 위해 촬영 중 잠깐 빠져나왔다. 한예리에게 특별히 잘하지는 않는다. 별 애정 없이 만나는 연인의 느낌이다. 자기 멋에 취해 사는 사람같다. 한예리와 티격태격하는 대화가 조금 이상하다. 서로 바람을 핀 전력이 있는 것 같다. 서로에게 그 사람과는 끝난게 맞냐라는 대화를 나눈다. 당연히 둘 다 현재 바람피고 있지 않다고 이야기를 한다. 그렇게 대화를 마무리하는데 권율이 말실수를 한다. 사람들이 알아볼까봐 권율이 쓰고 있던 선글라스를 한예리가 장난으로 뺏어가자 내놓으라고 하면서 다른 여자 이름을 부른 것이다. 한예리가 끝난 게 확실하냐고 물은 그 여자 이름이다. 화가 난 한예리는 선글라스를 부셔버리고 끝이라고 말하며 가버린다.

그 후 권율과 헤어진 한예리는 남산에 앉아있다가 권율을 만날 때 잠시 바람을 폈던 유부남 이희준을 만난다. 정확히는 한예리가 남산에서 올린 사진을 보고 이희준이 쫓아온 것이다(스토커). 이희준은 한예리가 떠나서 너무 힘들었다고 말한다. 근데 또 다시 만나자는 건 아니다. 전 부인과 재결합하기로 했다고 한다. 하지만 끝없이 한예리와의 추억이 얼마나 좋았는지를 이야기하며 진실이 어떻게 진심을 이기냐는 괴랄한 소리를 늘어놓는다. 한예리는 이희준보고 그만 가라고 한다. 오늘 하루 너무 힘드니까, 좀 그만 가라고. 이희준은 계속 안가려하지만 한예리가 완강하게 가라하니 결국 떠난다.

그리고 한예리는 얼굴보고 이야기하자는 권율을 다시 남산에서 만난다이야기를 나누는데 이희준이 다시 남산을 올라온다. 한예리는 도망치지만 결국 권율과 이희준, 한예리 셋이 만나게 되고 권율과 이희준은 한예리가 잠깐 바람을 핀 것이 아니며 꽤 오랫동안 자신들을 속이고 양다리를 걸쳤다는 것을 알게 된다. 둘은 한예리에게 욕을 하고 소주를 마시러 간다. 

여기까지가 한예리가 겪은 최악의 하루다.

그런데 또 다른 곳에서는 이와세 료가 최악의 하루를 겪고 있다. 이와세 료는 소설가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별 볼 일 없는 소설가다. 일본에서 단 한 권의 소설을 출간했다. 한국에 온 이유는 자신의 소설이 한국어로 번역되어 출판기념회(?)를 위해서 온 것인데 6개월간 100부남짓 팔렸다고 한다. 그리고 출판기념회에는 자신의 소설을 읽지도 않은 두 명의 아주머니가 와서 앉아 있다. 재밌어 보여서 들렀다고 한다. 심지어 출판기념회가 끝나자 자신의 책을 번역한 출판사 사장이 더 이상 출판사를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통보해온다. 

여기까지가 이와세 료가 겪은 최악의 하루다.

둘 다 이유는 다르지만 각자 최악의 하루를 겪는다. 한예리는 (극중 계속해서 진실이 얼마나 중요한지 이야기하지만) 자신이 저지른 거짓말들이 부메랑처럼 돌아와서 자신의 하루를 망쳐놓는다. 이와세 료는 거짓을 말한적은 없지만(사실 영화에 나오는 모두가 거짓말을 하기에 모를 일이다) 잘 나가지 못하는 자신의 능력, 암담한 미래 등에 의해 최악의 하루를 겪는다.

그리고 그 둘은 늦은 저녁 남산에서 다시 조우한다. 두 사람은 남산을 산책한다. 일본말로 아무 말이나 해달라는 한예리에게 이와세 료는 일본말을 해주고 그 말을 들은 한예리는 갑자기 무용을 한다. (실제 한예리는 한예종에서 무용을 전공했고 언젠가는 자신이 무형문화재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는데 무용 장면이 너무 아름답다.)

실제 영화 속 무용장면은 훨씬 예쁘다

둘은 서로의 일본말과 무용을 칭찬하고 이와세 료는 자신이 구상한 새로운 소설을 이야기해주며 이 소설은 해피엔딩일 것이라고 한예리에게 말해주며 영화는 끝난다. 뭐랄까, 잘잘못을 떠나서 최악의 하루를 겪은 두 사람이 서로에게 위로를 건네주는 기분이 들며 오늘 별 잘못을 안 한 나도 덩달아 위로를 받는 기분이다. 끗.

해피엔딩을 맞는 한예리..?